한국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기존 ‘택지 매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온 것입니다. 기존에는 LH가 토지를 수용·조성해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고, 그 차익으로 공공임대주택의 적자를 메워왔습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땅장사’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고분양가와 투기 조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에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임대형 택지 공급 제도입니다. 이는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 도시들이 이미 도입해 성과를 거둔 모델로, 한국에서도 특히 3기 신도시부터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LH 개혁 논의와 토지공개념
이재명 대통령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강력한 LH 개혁을 주문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가 주목받았습니다. 이날 토론회에는 추미애·박주민·진성준 의원 등 범여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며 임대형 택지공급을 본격적으로 논의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토지공개념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습니다. 토지를 단순히 매각해 민간이 이익을 독점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는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강조했던 사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임대형 택지공급의 핵심
임대형 택지공급은 공공이 토지를 소유한 채로 건설사나 개발사에 일정 기간 임대해 주택을 짓도록 하고, 임대료와 일부 수익을 장기적으로 환수하는 구조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단기적으로는 큰 차익을 얻지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토지 가치 상승분과 임대료 수익을 공공이 꾸준히 확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개발이익이 민간에 과도하게 귀속되지 않고 사회 전체에 돌아가므로, 장기적으로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이 가능해집니다.
싱가포르 HDB 모델: 한국의 미래?
싱가포르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지만, **HDB(주택개발청)**를 통해 국민의 80% 이상이 공공주택에 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HDB는 토지를 정부가 소유하고, 시민들은 99년 장기 임대 형식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습니다. 즉, 집은 소유하되 땅은 국가의 소유인 셈입니다. 덕분에 토지 불로소득이 차단되고, 세대별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인 주거가 가능합니다.
또한 싱가포르 정부는 토지임대료를 기반으로 장기적 재정을 마련해, 주택 건설뿐 아니라 인프라 확충·사회보장에도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세계적으로 주거 안정과 공공성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기 신도시, 임대형 택지공급 도입 가능성
한국에서 임대형 택지공급이 가장 먼저 적용될 수 있는 곳은 바로 3기 신도시입니다. 3기 신도시는 교통망과 입지가 우수해 이미 주거 수요가 충분히 검증된 지역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곳에 임대형 모델을 적용하면 재정 자립이 가능하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3기 신도시는 장기적으로 토지 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므로, 임대형 공급을 도입하면 채권 상환과 재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임대 수익의 일정 부분을 공공임대주택 운영 적자 보전에 활용하는 교차보조 구조도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공공은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건설사는 초기 자금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상호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넘어야 할 과제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초기 재원 마련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LH가 택지를 매각해 단기 수익을 확보했지만, 임대형 모델은 장기 회수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둘째, 민간 건설사의 참여 유인입니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자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제 혜택이나 금융지원 같은 정책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셋째, 국민적 인식 전환입니다. 아직도 많은 국민은 “내 집 마련=토지 소유”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처럼 토지는 국가 소유, 주택만 소유하는 방식이 정착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주거 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결론: 한국형 싱가포르 모델 가능할까?
LH 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한 공기업의 운영 방식을 넘어서 한국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합니다. 싱가포르처럼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국민이 장기 임대 형태로 집을 소유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에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단기적 재정 부담, 민간의 반발, 국민 인식 변화라는 과제를 풀지 못한다면 실행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형 택지공급은 토지 불로소득 환수·주거 안정·개발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적 합의입니다.
3기 신도시, 우리도 싱가포르처럼 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정책 결정이 그 답을 보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