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은 19년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률을 기록했다. 언론 헤드라인만 보면 서울 전체가 다시 불장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 상승은 서울 전체의 회복이라기보다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 현상에 가깝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지역은 여전히 과거 고점은커녕 문재인 정부 시절의 가격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집값의 체감 온도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절반의 자치구, 아직도 기준선 아래
KB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강북, 노원, 도봉, 동대문, 서대문, 성북, 은평, 중랑, 강서, 관악, 구로, 금천구 등 12개 자치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100 미만이다.
이 지수는 2022년 1월을 기준(100)으로 집값 흐름을 나타내는데, 100 아래라는 것은 4년 전보다 집값이 오히려 낮다는 의미다. 서울 집값이 크게 올랐다는 말과 달리, 상당수 지역은 아직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금천구는 지난해 12월 매매가격지수가 88.9로, 전년 말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도봉구 역시 81선에서 1년 내내 횡보하며 2020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실거래가가 말해주는 현실
지표만 봐도 체감이 안 된다면, 실거래 가격은 더 명확하다.
금천구의 한 아파트 전용 84㎡는 2021년 최고가 8억5000만원을 기록한 이후 현재는 6억원대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체결된 가격 역시 6억원 수준이다.
도봉구의 또 다른 단지 역시 2021년 6억9000만원의 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 내내 5억원대 거래가 이어졌다. 고점 대비 회복은 아직 요원한 모습이다.
즉, 서울 집값 상승이라는 말 뒤에는 회복하지 못한 지역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다.
집값 상승의 중심은 결국 ‘한강벨트’
지난해 서울 집값 상승을 이끈 지역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송파구, 성동구, 강남구, 광진구 등 이른바 한강벨트 지역이 상승을 주도했다.
송파구는 1년 사이 매매가격지수가 24포인트 상승했고, 성동구 역시 22.5포인트가 올랐다. 이는 2002년 관련 지표 집계 이후 전례 없는 상승폭이다.
이들 지역은 공통적으로 입지, 학군, 직주근접, 희소성이라는 요소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자금력이 있는 실수요자와 투자 수요가 규제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더 안전한 곳으로 몰린 결과다.
숫자로 확인되는 서울 집값 양극화
서울의 집값 양극화는 수치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5분위 배율은 6.9다. 상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은 34억 원이 넘는 반면, 하위 20%는 5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과거 4~5 수준에서 움직이던 배율은 2024년 들어 처음으로 6을 넘어섰고, 현재 흐름대로라면 7을 넘기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 수치는 단순한 가격 차이가 아니라 주거 기회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규제는 집값을 잡았을까, 쏠림을 키웠을까
지난해 정부의 고강도 대출·부동산 규제는 결과적으로 서울 내 집값 양극화를 더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출이 막히자 자금 여력이 있는 수요자들은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불안 속에 한강벨트 핵심 지역으로 더 빠르게 몰렸다.
반면 중저가 지역은 거래가 얼어붙으며 가격 반등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규제가 시장 전체를 누르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더 강화한 셈이다.
서울 집값, 이제는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
이제 서울 집값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시대는 끝났다. 같은 서울이라도 어느 구, 어느 생활권이냐에 따라 시장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실수요자라면 ‘서울이 오르느냐’가 아니라 내가 보려는 지역이 회복 국면인지, 정체 구간인지를 냉정하게 구분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 집값의 문제는 더 이상 상승과 하락이 아니라, 양극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있다.